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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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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보잉 C-97 스트라토프레이터의 민간 여객기 버전으로, 1947년 첫 비행을 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민간 항공기 도입을 추진한 보잉은 대형 동체, 긴 항속 거리를 갖춘 377을 장거리 노선에 투입했다. 377은 8자 모양의 "이중 버블" 동체를 가졌으며, 4개의 프랫 & 휘트니 R-4360 엔진을 장착했다. 1949년 팬 아메리칸 항공이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에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항공사가 주요 노선에 투입했지만, 높은 운용 비용과 신뢰성 문제로 인해 1960년대 초 제트 여객기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후 개조를 거쳐 에어로 스페이스라인의 대형 화물기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 공군에서 수송기로 운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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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
개요
샌프란시스코 만 상공을 나는 팬암 스트라토크루저
유형여객기
제작 국가미국
제작사보잉 상업용 항공기
최초 비행1947년 7월 8일
소개1949년 4월 1일, 팬아메리칸 월드 항공
퇴역1963년
생산 대수56대
주요 운용사팬아메리칸 월드 항공
기타 운용사영국해외항공
노스웨스트 항공
파생에어로 스페이스라인 임신한 구피
상세 정보 (보잉377 스트라토크루저)
팬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377
용도여객기
분류왕복 엔진 여객기
제조사보잉
운용사팬아메리칸 항공
영국해외항공
아메리칸·오버시즈 항공
그 외
첫 비행일1947년 7월 8일
생산수56대
생산 시작일1946년
운용 상황전 기종 퇴역
원형기C-97 스트라토프레이터

2. 설계 및 개발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개발된 군용 수송기 보잉 C-97 스트라토프레이터를 기반으로 한 민간 여객기이다.[4] C-97은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 설계를 활용했다. 전후 민간 항공 시장을 겨냥하여, 보잉의 윌리엄 맥퍼슨 앨런 회장은 C-97의 장점을 살려 장거리 고급 여객기 개발을 추진했다.[4] 1945년 말, 보잉은 항공사의 사전 주문 없이 50대 생산을 결정하는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5]

이 결정은 1945년 11월 29일 범아메리카 항공(Pan Am)이 2450만달러 규모의 스트라토크루저 20대를 주문하면서 첫 결실을 보았다.[5] 이는 당시 기록적인 상업 항공기 주문이었으며, C-97의 성능과 팬암의 보잉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5][6]

스트라토크루저는 C-97로부터 물려받은 독특한 "이중 버블" 동체 구조와 강력한 프랫 & 휘트니 R-4360 엔진 등을 특징으로 했다. 첫 비행은 1947년 7월 8일에 이루어졌고, 이후 3대의 시험기가 총 약 402335.00km에 달하는 시험 비행을 거쳐 인증을 받았다.[9] 개발에는 총 4백만 인시(man-hour)가 투입되었다.[8]

팬암 외에도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 아메리칸 해외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등이 스트라토크루저를 도입했다. 특히 노스웨스트 항공의 도입 과정에서는 미국 정부의 우편 계약 및 재건 금융 공사 대출 지원과 관련하여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다.[19]

총 56대(시제기 1대 포함)가 생산되어 1950년 5월 마지막 기체가 BOAC에 인도되었으나,[7] 높은 개발 비용과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상업적 성공은 제한적이었고, 보잉은 이 프로젝트에서 7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10] 유나이티드 항공은 수익성 문제로 1954년 보유 기체를 BOAC에 매각했다.

2. 1. 디자인 특징

접이식 침대를 펼친 기내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군용 수송기인 보잉 C-97 스트라토프레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민간 여객기이다.[4] C-97의 독특한 설계 특징을 이어받아, 동체 단면이 숫자 8 모양과 유사한 "이중 버블(double bubble)" 형태를 가졌다. 이 구조는 상부와 하부의 두 개 층으로 나뉘어 총 약 186891.19L3의 넓은 내부 공간을 확보했다. 상부 동체의 외부 직경은 약 335.28cm로, 동시대의 더글러스 DC-6 (약 317.50cm)보다 넓었으며, 현대의 보잉 737 (약 375.92cm)보다는 좁았다. 하부 데크는 주로 14개의 좌석을 갖춘 라운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7]

스트라토크루저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들을 다수 적용했다. 높은 고도에서도 쾌적한 비행을 위해 기존 여객기보다 더 높은 기내 압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에어컨 시스템도 갖추었다. 또한, 4개의 프랫 & 휘트니 R-4360 엔진에 장착된 과급기는 고도에서의 엔진 출력을 높이는 동시에 일정한 기내 압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7] 날개는 보잉 117 에어포일 설계를 사용했으며, 기체 개발에는 총 4백만 인시(man-hour)가 소요되었다.[8]

보잉 377은 상업적으로 생산된 몇 안 되는 복층 여객기 중 하나로, 프랑스의 브레게 드 퐁과 이후 등장한 보잉 747, 에어버스 A380 등과 함께 언급된다.

"'''최후의 대형 프로펠러 여객기'''"라는 별칭에 걸맞게 호화로운 내부 시설로 유명했다. 국제선 사양의 경우, 2층 구조의 객실에는 접이식 침대와 남녀별 세면대가 마련되었고, 1층 라운지에는 시설과 소파가 갖춰져 승객들에게 "하늘을 나는 호텔"과 같은 경험을 제공했다. 초기에는 장거리 대양 횡단 노선에 주로 투입되었으며, 퍼스트 클래스 단일 좌석 또는 침대칸 위주로 운영되어 1930년대 대형 비행정의 운영 방식과 유사한 면이 있었다.

이러한 호화로움은 여러 유명 인사들의 탑승 일화로도 남아있다. 영화 평론가 요도가와 나가하루는 195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참석차 팬암의 보잉 377을 이용하며 침대칸에서 잠을 자고 라운지에서 담소를 나누었던 경험을 자서전에 남겼다. 또한 1954년 마릴린 먼로조 디마지오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용한 비행기도 팬암의 보잉 377이었다.

2. 2. 개발 배경

보잉 377 생산 라인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보잉사가 B-29 슈퍼포트리스 전략 폭격기를 기반으로 개발한 C-97 스트라토프레이터 수송기의 민간용 파생 기종이다. C-97은 1944년 11월 9일에 첫 비행을 했으며, B-29의 주익과 구조 설계를 활용하면서 동체와 수직 꼬리 날개를 확대하고 엔진을 프랫 & 휘트니 R-4360으로 교체한 모델이다.[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군수 생산이 감소하자, 1945년 9월 보잉 회장으로 취임한 윌리엄 맥퍼슨 앨런은 이를 대체할 새로운 민간 항공기 개발을 추진했다.[4] 보잉은 C-97의 대형 동체, 빠른 속도, 긴 항속 거리가 범아메리카 항공(Pan Am)의 보잉 314 클리퍼 성공 사례처럼 장거리 대양 횡단 노선에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객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앨런은 1945년 말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의 사전 주문 없이 스트라토크루저 50대 생산을 결정하며 프로젝트에 자본을 투입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5]

이러한 결정은 곧 성과를 보였다. 1945년 11월 29일, 범아메리카 항공은 2450만달러 규모의 스트라토크루저 20대를 주문하며 첫 고객이 되었다. 이는 당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업용 항공기 주문이었다.[5] 범아메리카 항공이 고가의 신형 항공기 주문을 결정한 배경에는 1945년 초 C-97이 시애틀에서 워싱턴 D.C.까지 6시간 4분 만에 논스톱 비행에 성공한 사실과, 후안 트리페 범아메리카 항공 사장이 보잉 314 클리퍼의 성공 이후 보잉사에 대해 가졌던 높은 신뢰가 있었다.[5][6]

보잉 377은 C-97을 기반으로 대형 장거리 여객기로 개발되어, 1947년 7월 8일에 첫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범아메리카 항공의 뉴욕-런던 노선을 시작으로 태평양 횡단 노선 등 주요 장거리 노선에 투입되었다. 보잉 377은 더글러스 DC-7 등 동시대 다른 항공기들과 비교했을 때, B-29에서 파생된 C-97을 기반으로 더욱 진보된 기술과 설계를 적용했으며, 당시 항공기용 대형 왕복 엔진의 최종 진화형으로 평가받는 R-4360 엔진을 탑재하여 기술적으로 앞선 기종으로 평가받는다.

3. 운항 역사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민간 항공 시장을 겨냥하여 개발된 항공기이다.[4] 군용 수송기인 보잉 C-97 스트라토프레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넓은 동체와 장거리 운항 능력을 갖추어 대양 횡단 노선에 투입될 고급 여객기로 기대를 모았다. 1945년 11월, 범아메리카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 Pan Am)이 20대를 주문하며 첫 고객이 되었는데[5], 이는 당시 상업용 항공기 주문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팬암은 보잉 314 클리퍼의 성공적인 운용 경험과 C-97의 성능을 바탕으로 고가였던 377 도입을 결정했다.[5][6]

377기는 8자 모양의 독특한 "이중 버블" 동체 구조를 가졌고, 2개의 여객 데크로 나뉘었다. 하부 데크는 라운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기내 기압 유지 시스템과 에어컨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편의 시설을 갖추었다.[7] 1947년 7월 8일 첫 비행에 성공했으며[9], 이후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 아메리칸 해외 항공(AOA), 유나이티드 항공,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등 여러 항공사가 도입했다.

1949년 4월 팬암이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에 처음 투입하며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이후 대서양 횡단 노선과 미국 국내선 등 다양한 노선에 투입되었으며, 한국 전쟁 발발 시에는 긴급 군사 수송 임무에도 동원되었다.[19]

스트라토크루저는 당대 가장 진보하고 호화로운 프로펠러 여객기 중 하나였으나[8], 복잡한 R-4360 엔진과 프로펠러 시스템의 잦은 고장으로 신뢰성 문제가 있었고 유지보수 비용도 높았다.[19][42] 특히 높은 운용 비용 때문에 일부 항공사는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유나이티드 항공은 1954년 보유 기체를 모두 매각하며 비교적 일찍 운용을 중단했다.[21][24]

1950년대 후반 데 하빌랜드 코멧, 보잉 707, 더글러스 DC-8과 같은 제트 여객기가 등장하면서 속도와 경제성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결국 스트라토크루저는 주요 노선에서 점차 밀려나 196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 퇴역했다.[19] 총 56대(프로토타입 1대 포함)가 생산되었으나, 높은 개발 비용과 짧은 운용 기간으로 인해 보잉은 이 기종으로 7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10]

3. 1. 주요 운항 노선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lines) 377기가 골든 게이트 브리지 위를 지나고 있다.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 스트라토크루저


선도 고객이었던 팬암(Pan Am)은 1949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호놀룰루까지 정기 운항을 시작하며 스트라토크루저 시대를 열었다. 같은 해 말, 팬암과 영국 해외 항공 공사(BOAC), 아메리칸 해외 항공(AOA)는 377기를 대서양 횡단 노선에 투입했으며,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은 미국 국내선 운항을 시작했다. 1950년 1월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에 377기를 투입했다. 스트라토크루저는 한국 전쟁 발발 후 긴급 군사 수송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19]

1950년 말 기준으로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의 스트라토크루저는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밀워키, 스포캔, 시애틀, 호놀룰루를 연결하는 노선에 투입되었다.[11] 1952년 말, 노스웨스트는 앵커리지를 경유하는 도쿄 노선에서 기존의 DC-4를 스트라토크루저로 대체했다.[12] 그러나 노스웨스트는 1953년 호놀룰루 노선[13], 1955년 도쿄 노선에서 스트라토크루저 운항을 중단하고 다른 기종으로 교체했다.[14]

팬암의 377기는 한때 레바논베이루트까지 운항하기도 했으나, 1954년 이후로는 유럽 동부나 싱가포르 서쪽 지역으로는 정기 운항을 하지 않았다. 1954년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트라토크루저는 로스앤젤레스-호놀룰루, 시애틀-샌프란시스코 노선을 운항했으며[15], 특히 호놀룰루 노선은 전 좌석 일등석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유나이티드는 수익성 문제로 같은 해 스트라토크루저 운항을 중단하고 보유 기체를 BOAC에 매각했다.

1955년 BOAC의 377기는 뉴욕-런던 노선에서 일등석 50석(편도 400USD) 또는 관광석 81석(편도 290USD) 구성으로 운항되었다.[16] 1956년 팬암은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호놀룰루, 캔톤 섬, 수바(피지의 나디 공항 경유)를 거쳐 시드니까지 운항하는 태평양 횡단 장거리 노선에 377기를 투입했다.[17] 1958년까지 팬암은 시애틀, 워싱턴 주에서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 주노, 케치칸을 잇는 노선과 시애틀에서 캐나다 유콘화이트호스를 잇는 노선에도 스트라토크루저를 운항했다.[18]

최초 인도 후 6년 동안 스트라토크루저 기단 전체는 총 3,199,219명의 승객을 수송했으며, 3,597회의 미국 대륙 횡단 비행과 27,678회의 대서양 횡단 비행을 완료했다. 또한 미국과 남아메리카 간을 822회 왕복 운항하며 총 약 273361814.87km을 비행했다.[7] 377기의 가장 긴 논스톱 비행 기록은 1952년 겨울부터 1953년까지 팬암이 운항한 도쿄-호놀룰루 노선에서 세워졌다. 1953년 1월에는 순풍의 도움으로 주 2회 논스톱 운항이 11시간 1분 만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같은 해 8월에는 모든 비행이 웨이크 섬 비행장에 중간 기착하여 총 19시간이 소요되었다. 1953-54년 겨울에는 약 6200.79km 거리의 도쿄-호놀룰루 구간을 9시간 35분 만에 주파한 기록도 있다.[27]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트라토크루저는 데 하빌랜드 코멧, 보잉 707, 더글러스 DC-8과 같은 제트 여객기에게 주요 노선을 내주게 되었다. 유나이티드 항공은 이미 1954년에 운항을 중단했으며, BOAC는 1959년,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은 1960년 9월에 마지막 비행을 마쳤다. 1960년 11월에는 팬암의 호놀룰루-싱가포르 주 1회 운항 노선만이 남았고, 이마저도 1961년에 팬암이 377기를 완전히 퇴역시키면서 스트라토크루저의 여객 운항 시대는 막을 내렸다.[19]

3. 2. 퇴역

1958년에는 트랜스오션 항공이 전세편과 저가 운임의 북태평양 횡단 노선 강화를 목표로 중고 보잉 377 8대를 구매하여, 정기편으로 당시 미군 점령 하에 있던 오키나와의 나하 등에 취항했다. 그러나 이 항공사는 1960년 1월에 파산했다.

높은 운용 비용과 보잉 707, DC-8 같은 제트 여객기의 등장으로 보잉 377은 빠르게 퇴역했다. 1959년에는 영국 해외 항공에서, 1960년에는 노스웨스트 항공에서, 1961년에는 팬 아메리칸 항공에서 퇴역하는 등, 1960년대 초에는 대부분의 주요 항공사에서 여객 정기편 운항이 중단되었다.

주요 항공사의 장거리 노선에서 퇴역한 후, 중단거리 국제선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부 기체는 남미 일부 항공사에 판매되어 여객 전세편이나 부정기편으로 사용되었다. 그 외 다수의 기체는 보잉 707 도입에 따른 반납 등으로 인수되어 모하비 사막 등에 보관되다가 파생형 화물기로 개조되거나 해체되었다. 이 때문에 여객기로서의 원형을 유지한 채 현존하는 보잉 377 기체는 없다.

4. 파생형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여러 파생형이 제안되었으나, 실제로 제작되거나 개조된 기종은 제한적이었다.

제작 및 개조된 주요 파생형
모델명주문 항공사 / 운용 주체주요 특징비고
377-10-19프로토타입 → 팬암-1대 제작 후 377-10-26 사양으로 개조[29]
377-10-26팬암둥근 창문[30]20대 신규 제작 + 프로토타입 개조 1대[31]
377-10-26S팬암슈퍼 스트라토크루저. 더 강력한 엔진, 연료 용량 증가 (대서양 횡단용)[31]10대 재개조
377-10-28BOAC (원래 SAS 주문)원형 창문, 기체마다 다른 고급 인테리어[30][32]4대
377-10-29AOA주 객실 둥근 창, 하부 객실 사각형 창[30][33]8대
377-10-30노스웨스트 항공모든 창문 사각형, 기상 레이돔 장착[30][33]10대
377-10-32BOAC모든 창문 원형[30][34]6대
377-10-34유나이티드 항공 → BOAC주 객실 사각형 창, 하부 객실 원형 창[30]7대 제작 (6대는 나중에 BOAC에 판매)[34]
377F-화물기 개조-
377M 아나크이스라엘 공군C-97 꼬리, 화물 도어, 강화 바닥 등 (아래 참조)아래 상세 서술



다음은 제안되었으나 제작되지 않은 파생형들이다.


  • 377-1: 라이트 R-3350 듀플렉스 사이클론 엔진 탑재, B-29 플랩 및 방빙 부츠 장착 제안.[29]
  • 377-6: 과급된 앨리슨 V-3420 엔진 탑재 제안.[29]
  • 377-10-27: TWA용으로 설계되었으나 미제작.[38]
  • 377-10-40: 국내선용 고밀도 좌석(104석 또는 105석) 제안.[35]
  • 377-11: 라이트 XA-395 터빈 엔진 탑재 제안.[29]
  • 377-17-39: 쿠바나 데 아비아시온용 제안. 4개의 앨리슨 T40 터보프롭 엔진, 동체 약 203.20cm 전방 및 약 101.60cm 후방 연장, 총 중량 약 69399.58kg, 133명 또는 137명 탑승 가능한 초고밀도 구성.[36][37]
  • 377-28-26: 팬암용 6개 엔진(R-4360 4개 + R-1820 2개) 제안.[36]
  • 377-212: 2층 전체를 이코노미 클래스로 구성하는 제안 (주 갑판 72석, 하부 갑판 14석 또는 22석).[29]


2007년, 이스라엘 공군 박물관에 현존하는 '''377M 아나크'''


1960년대 초, 이스라엘 공군은 대형 화물 수송 능력 강화를 위해 C-130 허큘리스 도입을 원했으나, 높은 비용과 미국의 판매 금지 조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대안으로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은 퇴역한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를 개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개조 기체는 377M 아나크(Anak, 히브리어로 거인을 의미)로 명명되었으며, 1964년부터 운용에 들어갔다.[55]

377M은 군용 수송기인 C-97과 유사한 형태의 꼬리 부분과 후방 클램쉘형 화물 도어를 장착하고, 화물 적재를 위해 바닥 구조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일부 기체(3대)는 캐나데어 CL-44와 유사하게 꼬리 부분이 옆으로 열리는 스윙 테일(Swing Tail) 방식으로 개조되었다. 또한 2대는 날개 아래에 호스 및 드로그 방식 급유 포드를 장착한 공중급유기로, 다른 2대는 전자 정보(ELINT) 수집 및 전자전(ECM) 임무를 수행하는 전자전기로 개조되었다. 이후 KC-97G와 동일한 플라잉 붐 방식 급유 장치를 갖춘 기체 4대가 추가로 도입되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들 377M 및 KC-97 계열 기체를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 위치한 제120 비행대에서 집중적으로 운용했으며, 1970년대에 보잉 707 기반 기종으로 대체되면서 순차적으로 퇴역했다.[55]

4. 1. 에어로 스페이스라인 거피 시리즈

프레그넌트 거피 대형 수송기


터빈 동력의 슈퍼 거피 (NASA 소속)


1960년대에 미국의 Aero Spacelines는 퇴역한 보잉 377 기체를 기반으로 특수 목적 화물기 시리즈인 '거피(Guppy)'를 개발했다.[3] 이 항공기들은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 로켓의 거대한 부품이나 다른 항공기의 대형 부품을 공장 간에 운송하기 위해 동체 상부를 크게 확장한 독특한 외형을 가졌다. 개조에는 주로 팬 아메리칸 항공에서 운용했던 377-10-26 기종의 중고기가 사용되었다.

거피 시리즈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 프레그넌트 거피 (Pregnant Guppy, 377PG): 가장 먼저 개발된 모델이다. 377-10-26 기종 1대를 개조하여 제작되었으며, 새턴 V 로켓의 S-IVB 단과 같은 대형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동체 상부 데크를 확장하고 동체 길이를 약 4.88m 늘렸다.
  • 슈퍼 거피 (Super Guppy, 377SG): 프레그넌트 거피를 기반으로 개발된 대형 화물 수송기이다. YC-97J 스트라토프레이터와 377 기체의 부품을 결합하여 더 큰 동체와 꼬리 날개를 가졌으며, Pratt & Whitney T34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했다.
  • 슈퍼 거피 터빈 (Super Guppy Turbine, 377SGT / Aero Spacelines 201): 슈퍼 거피(377SG)를 더욱 개량한 모델이다. 기존 모델보다 공기역학적으로 개선된 동체, 보잉 707의 노즈 기어, 약 7.01m 길어진 날개, 그리고 4개의 Allison 501-D22C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했다.[38] 총 4대가 제작되었으며, 에어버스는 이 기체를 사용하여 유럽 각지의 공장에서 생산된 항공기 부품을 최종 조립 공장으로 운송하는 데 활용했다. 1990년대에 에어버스는 운영 비용 증가 등의 이유로 슈퍼 거피 터빈을 퇴역시키고 자체 개발한 에어버스 벨루가로 대체했다. 퇴역한 기체 중 2대는 독일과 프랑스에 보존되어 있으며, 영국 브런팅소프에 있던 1대는 2020년 12월 해체되었다.[39] 나머지 1대는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 협력의 일환으로 NASA가 인수하여 현재까지 운용 중이다.
  • 미니 거피 (Mini Guppy, 377MG): 377-10-26 기종을 개조하여 제작되었으며, 슈퍼 거피보다 작은 크기지만 여전히 대형 화물 수송 능력을 갖추었다. 확장된 주 화물칸, 길어진 날개, 그리고 화물 적재 편의성을 높인 경첩식 꼬리 구조가 특징이다.[40]
  • 미니 거피 터빈 (Mini Guppy Turbine, 377MGT / Aero Spacelines 101): 미니 거피(377MG)에 Pratt & Whitney T34-PWA 터보프롭 엔진을 장착한 모델이다. 총 2대가 제작되었다.[41]

5. 운용 항공사



골든 게이트 브리지 상공을 비행하는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보잉 377


트랜스오션 항공 소속 보잉 377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를 운용한 주요 항공사는 다음과 같다.

  • 팬아메리칸 항공 (Pan Am): 최초 고객으로 1945년 11월 20대를 주문했다.[5] 1949년 4월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에서 정기 운항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말에는 대서양 횡단 노선에도 투입했다. 1950년 아메리칸 해외 항공(AOA)을 합병하여 AOA가 주문했던 기체도 인수했다. 1961년까지 운용하며 스트라토크루저를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항공사 중 하나였다.[19]
  •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Northwest Orient): 미국 정부로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지원(우편 계약 및 대출)을 받아 스트라토크루저를 도입했다는 의혹이 있었다.[19] 1949년 말 미국 국내선 운항을 시작했으며, 이후 하와이 및 아시아 노선(예: 도쿄)에도 투입했다.[11][12] 1960년 9월 운항을 종료했다.
  • 영국 해외 항공 공사 (BOAC): 1949년 말부터 대서양 횡단 노선에 스트라토크루저를 투입했다. 1950년 마지막 생산 기체를 인도받았으며,[7] 1954년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으로부터 6대를 추가로 구매했다. 1959년까지 운용했다.
  • 아메리칸 해외 항공 (AOA): 1949년 말 대서양 횡단 노선에 투입했으나, 1950년 팬아메리칸 항공에 합병되면서 기체는 팬암으로 넘어갔다.
  • 유나이티드 항공 (United Airlines): 1950년 1월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15] 그러나 높은 운용 비용과 수익성 문제로 인해 1954년 보유 기체 6대 전부를 BOAC에 매각하고 운용을 중단했다.[21][24]
  • 트랜스오션 항공 (Transocean Airlines): 1959년부터 1960년 사이에 중고 기체 14대를 구매했으나, 1960년 회사가 파산하면서 운용 기간은 짧았다.[19]
  • 이스라엘 공군 (IDF): 퇴역한 스트라토크루저 5대를 수송기(모델 367M '아낙', Anak)로 개조하여 운용했다. 이 기체들은 제120 비행대에 소속되어 1978년까지 사용되었다.


그 외 스트라토크루저를 운용한 항공사 및 기관은 다음과 같다.

국가항공사/기관비고
-- 에콰도르리네아 인터나시오날 에어리아
-- 나이지리아나이지리아 항공
-- 나이지리아웨스트 아프리칸 에어웨이즈 (WAAC)BOAC로부터 임대[19] --
-- 가나가나 항공
-- 스웨덴스벤스크 인터콘티넨탈 루프트라픽 (스칸디나비아 항공 시스템의 일부)주문했으나 인도되지 않고 BOAC로 이전됨
-- 미국DAI 항공
-- 베네수엘라루타스 아에레아스 나시오날레스 SA (RANSA)



'''참고:''' 일부 항공사는 중고 기체를 구매하거나 단기간 임대하여 운용했다.

6. 사고

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는 1951년부터 1970년 사이에 총 13건의 기체 손실 사고를 겪었으며, 이로 인해 총 139명이 사망했다.[20] 이 기종은 특히 엔진 및 프로펠러 고장과 관련된 비행 중 비상 상황 발생 빈도가 높았으며, 이로 인해 여러 차례 감항성 개선 지시(Airworthiness Directive)가 내려졌다.[20][42]

주요 고장 원인으로는 네오프렌 코어 프로펠러의 구조적 결함, 과속을 유발하는 프로펠러 피치 제어 시스템 고장, 엔진 냉각 관련 문제 등이 있었다. 1950년부터 1955년 사이에는 프로펠러 고장으로 인해 엔진이 마운트에서 분리되거나 분리될 뻔한 사고가 6건 발생했으며, 이 중 2건은 기체 손실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1950년, 1955년, 1958년에는 유지보수 강화, 고장 감지 시스템 개선, 비행 중 진동 모니터링, 프로펠러 교체 등에 관한 지시가 내려졌다.[20]

1956년 10월 16일의 기체 손실 사고 이후에는 피치 제어 시스템에 대한 개선 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이 지시가 내려진 후에도 1957년 6월, ''Romance of the Skies'' (팬암 7편)에서 과속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는 같은 해 11월 8일 발생한 치명적인 추락 사고의 잠재적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42] ''Romance of the Skies'' 사고 이후 과속으로 인한 기체 손실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43]

주요 사고는 다음과 같다.

날짜항공사 및 편명기체 등록번호 (별칭)개요인명 피해 (사망/탑승)
1951년 9월 12일유나이티드 항공 7030편N31230 (Mainliner Oahu)기장 계기 점검 비행 중, 4번 프로펠러 정지 상태에서 ILS 접근 중 약 91.44m 고도에서 실속하여 샌프란시스코 만에 추락.3/3 (승무원 전원 사망)[44]
1952년 4월 29일팬암 202편N1039V (Clipper Boa Esperança)부에노스아이레스 출발, 뉴욕행. 2번 엔진 및 프로펠러가 분리되면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브라질 파라 주 남부 정글에 추락. (보잉 377 관련 최악의 사고)50/50 (탑승자 전원 사망)[45]
1952년 7월 27일팬암 201편N1030V뉴욕 출발, 부에노스아이레스행. 리우데자네이루 남쪽 상공 약 3657.60m에서 폭발성 감압 발생. 승객 1명이 기체 밖으로 튕겨 나갔으나, 비상 착륙 성공. 원인은 주 객실 문 잠금 불량.1명 사망[46][47]
1954년 12월 25일BOACG-ALSA (RMA Cathay)프레스윅 공항 착륙 중 추락. 런던발 뉴욕행. 접근 중 급강하 후 활주로에 미치지 못하고 지면 충돌.28/36[48]
1955년 3월 26일팬암 845/26편N1032V (Clipper United States)3번 엔진과 프로펠러가 분리되어 조종 곤란. 오리건 해안에서 약 56.33km 떨어진 해상에 불시착수. 20분 후 침몰.4/23
1956년 4월 2일노스웨스트 2편N74608 (Stratocruiser Tokyo)정비사가 엔진 카울 플랩을 닫지 않은 실수(계기판 혼란 추정)로 이륙 후 퓨젯 사운드에 불시착수. 탑승자 전원 탈출했으나 구조 과정에서 사망자 발생.5/38 (익사 또는 저체온증)
1956년 10월 16일팬 암 항공 6편N90943 (Clipper Sovereign of the Skies)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행 세계 일주 비행 마지막 구간. 엔진 2개(과속 후 고장)가 멈춰 하와이 북동쪽 해상에 불시착수. 미 해안경비대 함선 근처에서 구조. (탑승자 전원 생존)0/31[42]
1957년 11월 8일팬 암 항공 7편N90944 (Clipper Romance of the Skies)샌프란시스코 출발, 하와이행.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 및 추락. 잔해 일부와 시신 19구만 발견. 사고 원인은 미궁에 빠졌으며, 승무원 또는 승객에 의한 고의적 추락 가능성(보험금 노린 폭파 등)과 엔진 과속 문제 가능성이 제기됨.44/44 (탑승자 전원 사망)[42]
1958년 6월 2일팬암N1023V (Clipper Golden Gate)마닐라 공항 착륙 중 악천후 속 거친 착륙으로 착륙 장치 붕괴. 활주로 이탈 후 정지. 3번 프로펠러 날개가 분리되어 객실을 관통.1/58[49]
1959년 4월 10일팬암N1033V (Clipper Midnight Sun)시애틀발 주노행. 최종 접근 중 활주로를 벗어나 제방과 충돌 후 화재 발생. 기체는 전소됨.0/10[50]
1959년 7월 9일팬암N90941 (Clipper Australia)착륙 장치 문제로 하네다 공항에 동체 착륙. 기체는 폐기됨.0/59[51]
1967년 8월에어로 스페이스라인스N90942캘리포니아주 모하비 공항에서 지상 이동 중 다른 스트라토크루저(N402Q)와 충돌. 수리 불가능 판정.0[52]
1970년 5월 12일에어로 스페이스라인스 377MGTN111AS개조된 구피(Guppy) 항공기 시험 비행 중. 엔진 1개를 끈 상태에서 이륙 시도 중 좌측으로 기울며 추락, 조종석 파괴.4/4 (승무원 전원 사망)[53]



1956년 팬 암 항공 6편이 엔진 고장 후 하와이 근처 태평양에 불시착수하는 모습. 미 해안경비대 함선 폰차트레인 호에서 촬영되었다.


팬 암 항공 6편 불시착수 후 구조 장면.


특히 런치 커스터머였던 팬 아메리칸 항공에서 발생한 6편, 7편, 202편 사고는 모두 순항 중에 발생했으며, 엔진이나 프로펠러의 구조적, 재질적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다른 항공사에서 착륙 시 활주로 이탈(오버런) 등 조종 미숙으로 인한 사고 및 기체 손실도 다수 발생했다.

7. 제원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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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377 스트라토크루저 제원 [54]
구분내용
승무원4명 (기장, 부기장, 항공 기관사, 항법사) + 객실 승무원
승객주 갑판 최대 100명 + 하부 갑판 라운지 14명
(일반 배치: 63명 또는 84명 / 침대칸 배치: 침대 28개 + 좌석 5개)
크기
전장약 33.53m
전폭약 42.98m
전고약 11.58m
익면적약 164.35m2
중량
공허 중량약 37874.93kg
최대 이륙 중량약 67131.62kg
동력
엔진R-4360-B6 와스프 메이저 28기통 공랭식 성형 엔진 4기
엔진 출력각 3500hp
프로펠러4엽 정속 완전 깃털링 프로펠러
성능
최고 속도375mph
순항 속도301mph
항속 거리약 6759.23km
실용 상승 한도약 9753.60m
상승률1100ft/min


8. 한국과 보잉 377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사는 보잉 377을 직접 운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팬아메리칸 항공(PAA)과 노스웨스트 항공(NWA)이 일본 노선에 보잉 377을 투입하였고, 이들 항공편을 통해 한국에서도 보잉 377 기종을 볼 수 있었다. 팬아메리칸 항공과 노스웨스트 항공은 1950년대 후반 보잉 707이나 더글러스 DC-8과 같은 제트 여객기를 도입하면서 1960년대 초반에는 일본 노선에서 보잉 377의 운항을 중단했다.

1954년, 유명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와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팬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377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Boeing: Historical Snapshot: Model 377 Stratocruiser Commercial Transport http://www.boeing.co[...]
[2] 웹사이트 Boeing 377 Stratocruiser http://www.aviation-[...]
[3] 웹사이트 Boeing History: Stratocruiser Commercial Transport http://www.boeing.co[...] Boeing.com 1947-07-08
[4] 서적 Redding and Yenne 1997, p. 68.
[5] 서적 Redding and Yenne 1997, p. 69.
[6] 웹사이트 Boeing 377 Stratocruiser: The Original Jumbo Jet? https://internationa[...] 2019-09-28
[7] 서적 Redding and Yenne 1997, p. 71.
[8] 서적 Redding and Yenne 1997, p. 70.
[9] 서적 Pushing the Envelope: The American Aircraft Industry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0] 서적 Boeing 707 Group: A History https://books.google[...] Pen and Sword 2018-01-30
[11] 웹사이트 Sept. 24, 1950 Northwest Orient timetable http://www.timetable[...]
[12] 웹사이트 International Schedules http://www.timetable[...]
[13] 웹사이트 Complete Schedules http://www.timetable[...]
[14] 웹사이트 Complete Schedules http://www.timetable[...]
[15] 웹사이트 Aug. 1, 1954 United timetable http://www.timetable[...]
[16] 간행물 "Flight 28 October 1955 p671"
[17] 웹사이트 July 1, 1956 Pan American timetable http://www.timetable[...]
[18] 웹사이트 Jan. 1, 1958 Pan American timetable http://www.timetable[...]
[19] 웹사이트 Ernest K. Gann's Flying Circus: Lady with a past http://www.ovi.ch/b3[...] Ovi.ch 2012-06-18
[20] 웹사이트 Boeing Model 377 Stratocruiser Propeller Woes http://enginehistory[...] 2018-03-18
[21] 간행물 Aviation Week 31 August 1953, p.57. The article discusses CAB rulings, and Ireland was perhaps speaking at a hearing.
[22] 간행물 American Aviation 23 July 1951 p37
[23] 문서 Classic Airliners: Boeing Stratocruiser", p.64-67
[24] 문서 Airliner Tech Series, Vol. 9: Boeing 377Stratocruiser, p.60-61
[25] 간행물 American Aviation 8 January 1951, p.23.
[26] 간행물 The Aeroplane 15 October 1948
[27] 간행물 Aviation Week 15 Feb 1954 p100
[28] 서적 Wilson 1998, p. 16.
[29] 서적 Veronico, p.17
[30] 서적 Veronico, p.30
[31] 서적 Bowers, p.367
[32] 서적 Bowers, p.367–368
[33] 서적 Bowers, p.368
[34] 서적 Bowers, p.370
[35] 서적 Veronico, p.19
[36] 문서 Veronico
[37] 서적 Ultra-Large Aircraft, 1940-1970: The Development of Guppy and Expanded Fuselage Transports McFarland & Company
[38] 서적 Airlife's commercial aircraft and airliners https://www.worldcat[...] Airlife 1999
[39] 웹사이트 The end of Bruntingthorpe's Super Guppy https://www.scramble[...] 2020-11-28
[40] 서적 Airlife's commercial aircraft and airliners https://www.worldcat[...] Airlife 1999
[41] 서적 Airlife's commercial aircraft and airliners https://www.worldcat[...] Airlife 1999
[42] 간행물 The Mystery of the Lost Clipper http://www.airspacem[...] 2004-09
[43] 웹사이트 Aviation Safety Network > ASN Aviation Safety Database > Type index > ASN Aviation Safety Database results https://aviation-saf[...]
[44] 사고 N31230 2013-11-17
[45] 사고 N1039V 2011-09-15
[46] 사고 N1030V 2011-09-24
[47] 웹사이트 Fall From Plane Kills L.A. Woman https://www.newspape[...] 1952-07-28
[48] 사고 G-ALSA 2010-11-18
[49] 사고 N1023V 2013-11-17
[50] 사고 N1033V 2013-11-17
[51] 사고 N90941 2013-11-17
[52] 사고 N90942 2013-11-17
[53] 사고 N111AS 2013-11-17
[54] 서적 Airliners of the World https://archive.org/[...] Fyshwick, Australia: Aerospace Publications
[55] 웹사이트 aeroflight.co.uk 120sqn http://www.aerofl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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